김치에 관한 한국인의 집착은 유별나다. 아파트가 서울 시내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70년대 초. 아파트 옥상과 베란다 곳곳에 놓인 장독이 미관을 해치고 건물 하중을 높인다는 이유로 장독을 없애자는 정책을 펼쳤다. 때를 맞춰 공장에서 만든 간장, 된장 광고가 줄을 이었다. 간장 된장 고추장은 사먹는 것이 현대적인 삶이라는 인식이 퍼졌고 장독대는 도시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끝내 김칫독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김치는 당연히 집에서 담가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 틈새를 발견하고 1995년 세계 최초로 김치냉장고가 등장했다. 가정용 냉장고 보급률이 100%가 넘는 상황에서도 김치냉장고는 날개돋친 듯 팔렸다. 김칫독을 없애느니 차라리 집안으로 들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최근에 김치다운 김치를 드셔보셨나요?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일단 김치냉장고가 보급된 이상 전국 모든 가정이 굳이 특정 시기에 맞춰 김장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겨울 초입에 김장을 했던 조선 시대 풍습을 여전히 따른다. 사시사철 김장 재료를 구할 수 있음에도 아랑곳 않는다. 김장철만 되면 김장 재료 값이 폭등함에도 요지부동이다.
이런 문화가 이방인의 눈에도 꽤 특별해 보였던 것일까. 유네스코는 2013년 한국의 ‘김장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김장 외에 식문화 관련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은 프랑스 미식문화, 지중해식 식단, 멕시코 전통요리, 크로아티아의 생강빵 제조기술, 일본의 전통 식문화, 그루지야의 와인 제조법 등이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것은 무형문화유산의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 가치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크로아티아 생강빵이나 그루지야 와인의 운명에 관심 없듯 김장에 관한 외국인의 인식 역시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관심을 갖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식문화로 김장을 공식 인정 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김치 종주국 국민으로서 나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김장과 김치를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한번 보자. 김장이 공급이라면 김치는 수요의 문제다. 음식의 탄생과 전파는 공급이 주도하지만 정착과 확산은 수요자의 몫이다. 특정 음식의 종주국 지위를 갖자면 공급 측면에서는 독창적이고 수요 측면에서는 독보적이야 한다. 김장이라는 독창적 문화를 갖고 있지만 김치를 소비하는 수준에서 우리는 과연 독보적일까? 종주국 국민답게 김치의 가치를 인정하고, 제조과정을 낱낱이 인지하고, 발효와 숙성에 따른 맛의 차이를 꼼꼼히 따지고, 지역과 계절에 따른 다양한 김치를 즐기는 대신 ‘한국인은 김치 없이는 못살아’ ‘김치 없는 밥상은 상상도 못해’ 정도로 퉁치고 사는 건 아닐까?
이러는 사이 유통비용도 안 될 것 같은 10kg에 1만~1만5000원 하는 중국산 김치가 대중음식점의 식탁을 지배했고, 소비자는 맛이 예전 같지 않다며 젓가락도 대지 않고 김치를 남긴다. 김치종주국의 우울한 민낯이고 21세기 한국의 김치가 처한 딜레마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