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김치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2018년 김치산업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 1344명은 상품김치를 구매할 때 우선 고려하는 사항으로 ‘맛(44.4%)’을 꼽았다.
하지만 상품김치 대다수는 김치의 맛을 추상적으로만 표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비자들이 포장에 표기된 ‘불 김치’ ‘핫(Hot) 김치’ ‘맛있게 매운 김치’ 같은 표현만 보고 김치의 맛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매운맛부터 단맛과 짠맛에 이르기까지 김치의 다양한 맛을 누구나 알기 쉽게 표기한다면 최선이겠지만, 일단 김치의 주된 맛인 매운맛이라도 제대로 표기한다면 소비자들이 지금보다 편리하게 상품김치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관련 규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권고사항에 그치지만 한국산업표준(KS H 2169)과 전통식품표준규격(T020)은 김치의 매운맛 성분에 대한 단계기준 및 표기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해당 규정은 김치의 매운맛을 캡사이신(Capsaicin)과 디하이드로캡사이신(Dihydrocapsaicin) 함량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순한맛(4㎎/㎏ 미만), 보통 매운맛(4㎎/㎏ 이상 12㎎/㎏ 미만), 매운맛(12㎎/㎏ 이상)으로 나뉜다.
문제는 단계기준이 너무 낮게 설정돼 김치의 매운맛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규정대로라면 현재 시판 중인 상품김치의 절반가량은 가장 높은 단계인 ‘매운맛’에 해당한다. 소비자들이 실제로 먹어봤을 때 매운맛이 느껴지는 제품은 몇가지뿐인데 뭉뚱그려 분류되는 것이다.
또한 김치의 매운맛이 캡사이신과 디하이드로캡사이신 함량으로만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함량이어도 김치에 어떤 부재료가 들어갔는지, 숙성은 얼마나 됐는지에 따라 매운맛의 정도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소비자와 전문가 모두 김치의 매운맛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제기해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조건별로 반복적인 감각검사와 성분 분석을 거쳐 김치의 매운맛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표기만 보고도 매운맛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고, 같은 단계기준이 표기된 상품김치라면 제조사가 달라도 엇비슷한 매운맛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
김치를 직접 담그는 사람이 줄면서 상품김치시장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 상태로는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도, 범람하는 중국산 수입김치와 차별성을 갖추기도 어렵다. 김치 매운맛의 표준화와 함께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추진 중인 ‘김치 품질표시제’가 안착된다면 국산 상품김치의 경쟁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체계화·세분화된 매운맛의 표기가 해외 소비자들의 입맛에도 맞는 김치를 선보이는 계기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서혜영 (세계김치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