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변천사

삼국시대부터 유래한 김치는 고려시대 발전기를 거쳐 조선에 들어와서 오늘날과 같은 김치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이렇듯 김치는 우리민족의 변천사와 궤를 같이 하며, 끊임없이 발달한 <한민족 음식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치는 단순히 음식의 차원을 뛰어넘어 문화이며, 역사인 것이다.

김치의 역사는 정착 농경생활을 시작한 삼국형성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여진다. 동절기 소금의 발견과 더불어 동절기에 영양섭취의 주요한 방법이었다.

제민요술(AD439-35)에 의하면, 배추는 소금물에 담궈 두었고, 순무는 말려서 소금을 친후 기장죽, 보리누룩, 소금을 넣어 담궜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확실한 문헌기록은 없지만, 소금절임이 성행했던 점에 비추어 초기 형태의 김치가 발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는 ‘한약구급방’에 처음으로 배추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 시대에는 김치재료로 순무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장으로 절인 순무짱아치는 여름용으로, 소금에 절인 순무절임은 겨울 및 봄·가을 용으로 담궈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김치가 계절에 따라 먹는 조리가공 식품으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치의 변천사또한 조미료의 발달로 인해 단순한 소금절임이 아닌 향신료를 섞어 만든 김치가 생겼다. 조선초기에는 고려의 김치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발전했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초겨울 배추와 무를 절여 저장한다는 침장고(沈藏庫) 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세종실록에서도 김치를 뜻하는 저(菹)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때는 고려후기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소금절임의 김치가 아니라 각종 향신료가 많이 사용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김치가 발전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후기다.

16세기 일본에서 도입된 고추가 18세기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김치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19세기 김장김치에 적합한 결구배추가 중국으로부터 도입되어 본격적으로 재배되면서 오늘날과 거의 유사한 김장김치가 탄생한 것이다. 김치의 시대별 변천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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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참고문헌 기록 내용 김치 형태
삼국
시대
삼국지 위지동이전
三國志 魏地東夷傳
‘저(菹:소금절임) 제조’라는 단어 등장
김치의 변천사 - 삼국시대 김치 형태

산채류와 야생채류를 이용한 소금절임 위주의 김치의 근간 등장

정창원고문서
正倉院古文書
수수보리저(須須保里菹) : ‘김치무리’라는 용어 등장
제민요술(濟民料術) 김치 담그는 법 소개
통일
신라
삼국사기 신문왕
三國史記(神文王)
醯(혜) : ‘김치무리’라는 용어등장
고려
시대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
배추에 관한 기록 등장 순무장아찌(여름)와 순무소금절이(김치류)가 있었으며, 김치는 단순히 겨울용 저장식품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즐겨 먹는 조리 가공식품으로 변신
산촌잡영(山忖雜泳) 소금절이 김치 소개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순무를 절이는 방법 소개
조선
전기
태종왕조실록
王朝實錄
침장고(沈藏庫) 용어 등장
김치의 변천사 - 조선 전기 김치의 형태

절이는 채소의 종류와 향신료 사용이 다양해져 가는 시기

사시찬요초
四時纂要抄
침채저(沈菜菹)
수운잡방(需雲雜方) 무김치, 가지김치 등 소개
조선
후기
음식디미방
飮食知味方
산갓 김치, 생치 김치, 나박 김치, 생치 짠지, 생치지 등 소개
김치의 변천사 - 조선 후기 김치의 형태

고추 및 결구배추가 도입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김치로 발전함

증보산림경제
增補山林經濟
마늘, 파, 부추 양념으로 사용되었다는 내용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
여름의 장과 겨울의 김치는 곧, 민가에서 일년의 중요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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