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의 컬처차이나] 김치가 원래 중국 거라고?

컬처타임즈입력 2020-07-03

“중국이 한국 김치를 표절했다고?”, “정작 한국 김치 시장의 99퍼센트는 중국산!” 중국 웹사이트를 어슬렁거리던 중에 이런 말이 확 뜨였다. 자극적인 제목만큼 내용도 만만치 않았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작은 나라 한국은 늘 중국에 맞서 암중 경쟁을 즐긴다”면서 “단오를 빼앗아가고, 중국 전통 복식인 ‘한복’(漢服)을 마음대로 개량하고, 한자도 빌려 쓰는 주제에 가진 것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살아있다”라고 폭격했다.

한국 김치가 잘 나가니 배가 아픈 걸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문화의 기원은 “언제나 중국”이라는 사고방식이 중국을 지배하고 있다. 축구도 골프도 녹차도 모두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신앙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을 정도다. 김치는 벌써 세계적으로 한국 음식으로 소문나 있다. 옥스퍼드영어사전도 한국어에서 왔다며 ‘kimchi’를 표제어로 달아 놓았다.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인 김장은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북한의 ‘김치 담그기 전통’도 2015년 같은 목록에 등재됐다. 우리 김치가 그저 맛있고 유익한 먹거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오랜 문화 전통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 블로거는 ‘김치도 중국에서 시작했다면 참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에 대한 보상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김치가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중국에는 김치와 비슷한 ‘산채’(酸菜)라는 음식이 있다. ‘신 배추’라고 옮길 수 있을 텐데, 배추를 소금에 절여 보존하는 방식이다. 역사는 이천 년이 넘는다고 하는데 염장 방식이라 북쪽 지방, 특히 동북 지역에서 즐겨먹는다고 한다. 집안에 반드시 산채 담을 항아리와 배추를 누를 큼지막한 돌이 있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그랬던 산채가 가까운 한반도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인 주장도 있다.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고구려를 치러 올 때 따라온 시종들이 김치를 담갔는데 그 뒤에 우리도 김치를 먹기 시작했다는 설이다.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곳저곳에 소개된 우리 자료에도 김치의 어원을 따지면서 고대 중국에서는 ‘저’(葅)라고 불렀다는 말을 숨기지 않는다. 전문가들도 김치의 중국 기원설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하다.

요즘 중국어는 김치를 ‘포채’(泡菜)라고 부른다. 발효가 되면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기포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우리말 김치는 ‘침채’(沈菜)라는 말이 변했다고들 한다. 역시 배추를 물에 담가 먹는다는 뜻이다. 말이 변한 만큼 우리 김치와 중국 ‘포채’는 달라졌다. 특히 조선 중기에 들어온 고추는 김치의 혁명을 이끌었다. 우리는 중국과 달리 새로운 요소인 고춧가루를 활용하면서 독창적인 음식으로 바꾸어냈다.

문화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강박은 열등의식의 발로이다. 문화라는 말 앞에 결코 소속을 붙일 수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문화가 언제나 한 군데에만 속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한국문화니 중국문화니 하는 말들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영원한 한국문화도 영원한 중국문화도 없다는 뜻이다. 문화는 공간을 넘으면서 바뀌기도 하지만, 시간과 더불어 바뀌기도 한다. 적잖은 학자들이 이런 생각에 동의한다.

문화는 어디서 시작하든 언제나 흐르고 변화한다. 세종대왕은 평생 우리가 먹는 지금 같은 김치를 먹어보지 못했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의 역사는 길게 잡아야 삼백 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당당하고 떳떳하다면 누가 처음이었는가 하는 문제에 집착하기보다 어떻게 창조적인 변화를 만들어낼지를 고민한다. 흐르는 물을 손에 쥐고 ‘내 것’이라고 우기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러니 내 것, 네 것하며 아웅다웅할 필요가 없다. 문화는 바로 그렇게 물처럼 흘러간다.